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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재점령기(1945-1953)
 

    1945년 9월 프랑스군이 프놈펜을 탈환하였다. 프랑스는 적과 협력하였다는 죄목으로 쏜 옥 탄을 체포하여 프랑스로 추방하였으며, 시하누크가 실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프랑스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기 위하여 한동안 온건한 민족주의와 대외 중립노선 정책을 고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시하누크는 쏜 옥 탄을 비난하면서 프랑스에 대한 캄푸치아의 충성심을 재확인시켜 주는 등 프랑스의 환심을 샀다. 마침내, 시하누크는 프랑스와 8년여에 걸친 긴 협상을 통하여 명목상으로 법적 독립과 정치적 자치권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였다. 인도차이나 전체를 관할하는 프랑스 고등판무관(과거의 총독) 티에리 다르장리우(Thierry d'Argenlieu)제독은 구프랑스 연방국과 프랑스간의 새로운 공식적인 관계에 대하여 협상하자며 시하누크를 사이공으로 초대했다. 시하누크는 이 협상에 참여할 캄푸치아 협상자들을 "독립국의 대표자들"로 받아들이고 "캄푸치아의 독립에 영향을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상에 나갈 것을 수락하였다. 1946년 1월 7일의 잠정협정은 프랑스가 캄푸치아를 "프랑스 연방내의 자율적인 왕국”으로 인정했으나, 이것은 본질적으로 보면 전쟁전의 관계로 환원한 것이었을 뿐 큰 성과가 없었으나 시하누크는 프랑스와 있을 계속적인 협상에 기대를 걸고 국내적으로는 안정과 재건을, 대외적으로는 캄푸치아에 대한 호응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프랑스도 양국간의 원활한 협상을 위해 1941년에 일본의 강제로 태국에 할애했던 지역에 대한 반환을 약속하였다. 그러나 왕정에 대한 비판과 식민지 유산을 극복하기 위한 저항들이 일어났다.

 당시 캄푸치아는 프랑스 지배의 종식과 상징적인 왕의 존재를 인정하는 민주당과 프랑스 통치의 연장선에서 강력한 군주제를 선호하는 자유당으로 여론이 양분되어 있었다. 민주당은 강한 반프랑스 민족주의자들이며 쏜 옥 탄의 지지자들로 구성된 크메르 잇싸락(Khmer Issarak)의 지지를 받고 있었는데, 정작 쏜 옥 탄은 선거 자체를 거부하는 크메르 쌔라이(Khmer Serai)에 속하고 있었다. 정치적 안정을 위해 캄푸치아-프랑스인으로 구성된 헌법기초위원회가 헌법을 초안하였고, 이에 따라 1946년9월에 제헌의회가 선출되었으나, 민주당이 자유당보다 많은 의원석을 확보하였다. 의회에서 정치적 기반이 약해진 시하누크는 마침내 1947년에 왕의 권한을 많이 축소한 헌법을 공포하고 총선거를 실시하였으나 민주당이 역시 압승하였다.

 프랑스와 시하누크와의 오랜 협상 끝에 체결된 1949년 11월 9일 조약에서 캄푸치아는 국내문제에 대한 캄푸치아의 주권을 인정받았고, 프랑스 연방 내에 있는 인도차이나 반도의 연합 국가들 중의 하나로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데 성공하였다. 1950년에는 미국을 위시하여 비공산국가로부터 외교적인 승인을 받는 개가를 올렸다. 그러나 이 조약은 왕의 권한 행사 문제로 옘 쌈바우르 수상(Yem Sambaur)과 물의를 빛은 끝에 수상이 의회를 해산하는 바람에 좌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양 정부간의 서신교환 형태로 합의되었다. 그후 2년간 시하누크는 옘 쌈바우르 수상의 임시정부를 통해 캄푸치아를 통치하였는데, 반대 세력인 크메르 이싸락과 공산주의 세력(반정부 적개심이 강한 캄푸치아 인으로 구성된 토착 크메르루즈(Khmer Rouze)와 베트남에서 침투한 공산주의자를)을 빌미로 삼아 권위주의적 지배를 정당화하고 1951년 9월에 새 선거를 요구하였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이 다시 압승했다 새로운 정부는 쏜 옥 탄의 사면과 프놈펜 귀국을 프랑스에게 요청하였으며, 프랑스의 동의하에 귀국한 쏜 옥 탄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반프랑스 운동을 전개하였다. 프랑스가 체포하려 하자 그는 크메르 쎄라이와 연합하고 밀림 속으로 들어가 지하운동에 들어갔다. 1952년에 시하누크는 내각을 해산하고 쏜 옥 탄을 반역자로 낙인찍었으며, 스스로 왕위를 내놓고 수상이 되었다. 그후 캄푸치아의 완전한 독립을 얻기 위해 3년간 비상통치권을 요구하고 이듬해인 1953년 1월에 갑자기 의회를 해산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 상기 역사적 내용은 "동남아 미래국가 라오스, 캄보디아"의 제 7장 캄보디아의 문화와 역사(김영애글)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