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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점령기(1941-1945)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 1941년에 유럽에서는 프랑스 정부가 독일에게 패배하고 비시정권이 들어섰으며, 동남아시아에서는 일본이 급부상하면서 국제정치상 일본의 역할이 두드러졌다. 1941년 중엽에 일본군대가 캄푸치아에 진군하였으며, 1942년에는 캄푸치아에서 바탐방과 씨엠리압을 제외한 전 지역에 대한 프랑스의 명목상의 통치권을 일본이 인정하는 합의에 도달함으로서 일본은 실질적으로 캄푸치아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후 일본은 캄푸치아의 전통적인 사회기반을 재편성하려고 했다. 이 무렵 캄푸치아 사회는 왕정 세력, 민족주의 세력, 그리고 공산주의 세력의 3파로 서서히 분리되기 시작하였다. 민족주의 세력의 선두는 쏜 옥 탄(Son Ngnoc Thanh)이었다. 1936년에 쏜 옥탄은 나가라와따(Nagaravatta, 앙코르왓)라는 캄푸치아어 신문을 발간하여 국민들에게 과거 찬란했던 고대 크메르 제국의 영광과 명예를 상기시키고 전통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여 캄푸치아의 독립과 민족주의 운동을 고무시켰다. 일본은 쏜 옥 탄의 반프랑스 민족주의를 이용하여 1942년에 시하누크와 프랑스에 반항하는 "반시하누크-프랑스 폭동"을 일으키도록 뒤에서 지원하였다. 기대했던 일본의 지지가 미흡하였고, 또 프랑스가 반군세력을 패퇴시키자 쏜 옥 탄은 일시적이었지만 일본으로 피신하였다.

 확전에 따른 패배가 확실해 지면서 일본은 1945년 3월 9일에 프랑스 수비대를 공격하여 억류하고, 프랑스 식민지 행정을 해체했으며 베트남, 라오스, 캄푸치아의 독립을 선언하도록 선동하였다. 이어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하고 그 속에 이 세 나라를 포함시켰으며, 프랑스를 대신한 종주국으로서 국내외적으로 행동하였다. 시하누크는 일본의 독립계획에 호응하여 1945년 3월 IS일에 캄푸치아의 독립을 선언했으나 프랑스와는 적대관계를 갖지 않기를 원했으므로 독립선언 이상의 행위는 감행하지 않았다.

 베트남과 달리 캄푸치아에는 왕실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 시하누크의 카리스마적 영향력이 대단히 높았으므로 시하누크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일본은 일본에 있던 쏜 옥 탄을 귀국하도록 종용하여 외무부 장관 그리고 일본의 항복 전날에 캄푸치아 초대 수상으로 임명하였다. 당시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쏜 옥 탄은 프랑스로부터의 독립을 천명하였으나, 1945년 초부터 일본의 패망과 새로운 국제정치질서의 출현에 대한 예측이 확실해 지면서 프놈펜에서는 군주제적 전통의 힘을 과시하는 친군주제적 민족주의 세력과 반군주제적 민족주의 세력간에 치열한 갈등과 시가전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갈등은 당시 베트남의 지원을 받으며 막 캄푸치아에 들어온 캄푸치아 공산주의 세력으로 하여금 활동 근거지를 확보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후 왕정복고 세력, 민족주의 세력, 공산주의 세력들의 활동 영역이 더욱 확대되었다.

 

  - 상기 역사적 내용은 "동남아 미래국가 라오스, 캄보디아"의 제 7장 캄보디아의 문화와 역사(김영애글)의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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